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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기어코. ⠀ 기어코 한강에 왔습니다 ⠀ ⠀ 오들오들한 마음이 당장이라도 사라지길 기대했건만 ⠀ 강 너머에 노랗고 빨간 별들이 반짝거릴 때 까지 ⠀ ⠀ 주먹을 꽉 쥔채. 다리를 크게 다치고, 일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었습니다. ⠀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불안함에 하루종일 힘든 마음에, 다친 다리를 이끌고 한강공원에 왔습니다. ⠀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뭐라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파란 하늘이 새까매질 때 까지 우두커니 앉아있었답니다. ⠀ 지금도 여전히 나의 삶에 대해 고민이 많지만, 한강에서의 그 고민하는 시간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도서관, 나의 놀이터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작은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던 날, 아장아장 걷던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채 밖을 나왔다. 그 추운 날씨를 견디며 동생과 향한 도서관. 7호선 장승배기역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동작도서관이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다. 컴퓨터를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이 재밌어 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책이 좋아졌는지, 그리고 도서관을 언제부터 갔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한 권 뚝딱 끝내고 나면, 책에 몰입 했던 그 순간과 다 읽었다는 뿌듯함, 그리고 TV나 컴퓨터에서 느낄 수 없는 내 맘대로인 상상의 즐거움은 지금도 떠오른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오른편에 있던 아동서가로 향하면, 왼편에는 사서 선생님이 계시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빼곡..

그냥, 화가 나서.

보고 있니 친구들. 내 생각을 친구들에게 어디까지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얼마나 친구들에게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해도 되는 것일까. 나의 삶의 가치와 완전히 다른 모습들을 친구들에게서 발견하는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솔직히 화도 난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순간, ‘내가 말을 하면 분명 이 친구들과 멀어지겠지.’ 그래서 여기에다 속 좀 풀어보려고. 충분히 친구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있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명확히 이해한다. 내가 그 장소, 그 시간 속 많은 사람들의 입장이었다면 나도 분명히 화가 났겠지. 하지만, 적어도 화가 나는 그 상황에서 어느 순간 한 번 쯤은, 다들 이성적으로 머리는 굴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저 사람들이 왜 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마음이 쉬이 풀리지 않아서 또 집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본래 서울바라기 입니다. 도시의 화려함과 북적거림을 정말 좋아합니다. 둠칫둠칫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도시 한 복판을 걷다 보면 하루 종일이 즐겁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인가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할 때, 조용한 자연 속을 찾고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요.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산을 가자고 한다던지, 계곡이나 경치 좋은 곳을 가자고 하면 정말 가기 싫어했었습니다. 간다고 해도 축 쳐져가지고는 대체 집에는 언제 가는걸까, 하고 짜증만 났었어요. '나는 어른이 되면 이렇게 시간 안 보낼거야.' 하는 생각도 수백번은 했습니다. 정말 얼마 전 까지는, 어렸을 때 다짐대로, 혼자 대학로에 가서 좋아하는 연극도 보고, 강남 한 복판의 북..

소용돌이 쳤다

며칠 동안 정신이 없었다. 역시 관계 안에서의 문제들이 정말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는 머릿속의 지식은 쉽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관련 글 링크 감정이 휘몰아 칠 때는, 대부분 소용돌이 안에 내 몸을 맡겨버리곤 했다. 소용돌이가 끝날 때까지 내가 어디로 날아가던 생각하지 않고 눈만 질끈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소용돌이 안에서 중심을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써 봤다. 잘 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한쪽 발, 그리고 나머지 발도 소용돌이의 거친 바람 안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소용돌이 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얼마나 다칠까. 두렵고 무서웠다. 끝났다. 열심히 쌓아 놓았던 많은 나의 마음들은 무너졌고, 많이 다쳤다. 황..

엉엉. 훌쩍.

눈물이 많은 남자아이 눈물이 많은 게 정말 창피했습니다. 아버지가 무섭게 화내면서 때리면 눈물이 나고, 친구가 심한 말을 하면 눈물이 나왔습니다. 전학 가는 날, 종례시간에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뚝뚝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나를 배신했다 느꼈을 때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한 시간 내내 소리 내어 울기도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더 많이 울 수 있었는데 많이 참고 참아서 저만큼이었습니다. 다른 남자 친구들은 잘 울지도 않던데 왜 나는 그렇게 잘 울었던 걸까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몇몇 친구들은 나를 만만하게 보았고, 부모님은 눈물 많은 제가 탐탁지 않았죠. 눈물 흘린다고 무작정 때리기도 했던 걸 보면...... 남자 화장실에서 간간이 보이는 변기 앞 문구가 있습..

안녕, 술

술이 정말 좋아 성인이 되서부터 술 없는 일상은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일상의 큰 즐거움 중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 하고 난 후에 동료와 함께 마시는 술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술은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외로울 때 혼자 마시는 술은 좀 더 내 감정에 심취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놀러 가서 마시는 술은 행복함을 배로 불려줬습니다. 거기다 술은 또 왜 이렇게 잘 받는 몸인지. 다른 술들 뿐만이 아니라 소주 조차도 '맛있다' 고 느껴져서, 정말 '맛'으로 술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특히나 보드카나 양주 같은 도수 높고 깔끔한 술이 입에 맞아서, 다른 사람들이 입가심으로 탄산음료를 마실..

나와 사람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합니다. 사람으로서 당연한 어려움일 테고, 저 또한 많이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요즘 제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상담도 받으면서 '관계'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잡히는 것 같아 여기에 조금 정리해 보려 합니다. 다른 분들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인간관계를 이야기하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 관계 속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관계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모든 관계는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가 없는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선택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습니다. 관계 안에서 생기는 어려움의 이유는 정말 다양하겠죠. 그중에서 큰 부분을 ..

지금 그 곳은

자라오면서 이사를 많이 다닌 편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 태어나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물가물하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동네들, 그리고 성인이 돼서 내 선택대로 이사를 다니는 요즘까지. 아른거리는 그 순간 그 때 가끔씩 혼자 산책하거나, 낮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 옛날에 살았던 집, 그리고 동네들이 아른아른거려요. 연탄을 때던 집에서 살았을 때, 연탄아궁이 속의 연탄이 새빨갛게 올라오던 그 뜨거움. 집 앞에 굴러다니던 연탄재. 그 골목의 옆집 형,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았던 아련한 기억들. 바로 앞에 있던 목욕탕 집 딸과 초등학교 같은 반이 되어 함께 다니던 등하굣길. 야자를 끝내고 꼭 우리 집 앞까지 같이 와 주던 소중한 친구들과 걷던 동네.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 지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