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내려간 생각/기록

안녕, 술

오늘, 2022. 5. 25. 09:23

술이 정말 좋아

성인이 되서부터 술 없는 일상은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일상의 큰 즐거움 중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 하고 난 후에 동료와 함께 마시는 술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술은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외로울 때 혼자 마시는 술은 좀 더 내 감정에 심취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놀러 가서 마시는 술은 행복함을 배로 불려줬습니다. 거기다 술은 또 왜 이렇게 잘 받는 몸인지. 다른 술들 뿐만이 아니라 소주 조차도 '맛있다' 고 느껴져서, 정말 '맛'으로 술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특히나 보드카나 양주 같은 도수 높고 깔끔한 술이 입에 맞아서, 다른 사람들이 입가심으로 탄산음료를 마실 때, 저는 술을 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성인이 되어 정말 즐겁다.'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 다했죠. 

 

술이 적당히 들어가면, 붕 뜨는 기분과 함께 알딸딸한 기분이 그렇게나 좋습니다. 평소에는 목 아래 턱 막혀있던 말 들도 술이 들어가면 시원하게 뚫리고, 좀처럼 올라가지 않던 입꼬리도 씩, 올라갔습니다.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과 술자리를 통해서 더 가까워지는 기분도 행복했죠. 이렇게 마시면 행복해지는 술이라는 존재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적당히 마시면 약이다

몇몇 어르신들 말씀 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적당히 마시면 약이다.'

확실히 술 조금 마시면 답답했던 기분도 풀어지고, 긴장되었던 몸도 조금 이완되고 잠도 금방 드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맛으로도 먹는 입장에서 어떻게 조금 먹고 말겠습니까. 약이 될 정도만 술을 마셔보려고 해도, 정신 차리고 보면 그 술 맛에 한 모금 더, 한 모금 더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맛있으니까, 즐거우니까, 술친구가 먹자 하니까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적당한 술보다는 여전히 같은 패턴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부터 술을 마시고는 괴로움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숙취가 강해졌습니다. 속이 특히나 아파서 다음 날 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얼굴도 몸도 술 마신 후에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부었습니다. 술 마신 다음 날 하루 힘들던 것이 이제는 이틀은 힘들어졌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이제 인생의 무료체험판은 끝났다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이대로는 안된다. 정말 안된다. 


술을 마시지 않기 시작한지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술의 유혹이 정말 많았습니다. 술친구가 같이 안 마셔 준다고 서운하다 하고, 술자리에서 술 대신 물을 들이켜려니 뭔가 휑 하니 빠진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을 마시지 않고 보니 느껴지는 여러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일단 숙취를 느낄 일이 없다는 것이 가장 컸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당연할 수 있지만, 술을 주기적으로 먹고 있던 것만큼 숙취의 고통도 주기적으로 느껴왔던지라 그 느낌이 없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옅은 안개가 끼어있던 머릿속이 화창해진 기분. 개운합니다. 게다가 즐겨하는 운전도 음주운전 걱정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덩달아 만만치 않던 술 값도 나가지 않으니 지출도 확실히 줄었습니다. 

 

예전에도 술을 끊어볼까 하는 생각들은 많이 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술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함께 술을 마시는 친구들과도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내심 불안해서 결단을 하지 못한 것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한 달을 금주 중인데 느껴지는 장점들을 생각해 보면, 진작에 술을 그만 마실 걸 그랬다 하는, 빨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는 아쉬움마저 듭니다. 술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 대신에, 마시지 않아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더 즐기고, 금주 때문에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멀어지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술이 '악' 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술은 어느 정도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존재라고 여전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술은 지금의 저에겐 적어도 마이너스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말이죠.

 

안녕 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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