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내려간 생각/기록

엉엉. 훌쩍.

오늘, 2022. 6. 1. 12:45

배곧생명공원에서 본 일몰

눈물이 많은 남자아이

눈물이 많은 게 정말 창피했습니다. 아버지가 무섭게 화내면서 때리면 눈물이 나고, 친구가 심한 말을 하면 눈물이 나왔습니다. 전학 가는 날, 종례시간에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뚝뚝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나를 배신했다 느꼈을 때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한 시간 내내 소리 내어 울기도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더 많이 울 수 있었는데 많이 참고 참아서 저만큼이었습니다. 다른 남자 친구들은 잘 울지도 않던데 왜 나는 그렇게 잘 울었던 걸까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몇몇 친구들은 나를 만만하게 보았고, 부모님은 눈물 많은 제가 탐탁지 않았죠. 눈물 흘린다고 무작정 때리기도 했던 걸 보면......

 

 

남자 화장실에서 간간이 보이는 변기 앞 문구가 있습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죠.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 눈물 찔끔 나올 때마다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레퍼토리입니다. 

 

어떻게든 눈물 많은 나를 감추어 보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 혀를 깨물기도 하고, 남몰래 허벅지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눈 깜짝 안 하는데 혼자 남자답지 못하게 눈물이 나 흘리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눈물이 나오려 할 때마다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확 잠가버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20대 후반까지도 쭉, 계속되었습니다.

 

 

 

 

지금은 눈물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내가 울면 어때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솔직한 감정표현 중 하나인 것을. 눈물이 많은 건, 그냥 내 모습의 일부분일 뿐. 눈물이 많은 만큼, 나의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모습이라는 것. 눈물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을 확실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제가 어렸을 때와 지금은 시대도 많이 변했고, 나이를 한참 먹은 어른이 된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고도, 약한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약해 보인다는 고정관념이 저에게 여전히 있나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최근 들어서 눈물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슬픈 스토리의 드라마나 책을 보아도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면 눈물을 흘릴 일이 그만큼 줄어든 것일까요. 감정적으로는 힘든 일이 많은데, 속 시원히 꺼이꺼이 우는 일은 근 몇 년 동안 없었습니다. 마음이 팍팍해진 건지, 세월이 지나면서 변하는 자연스러운 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토록 싫어했던 눈물이 보이지 않으니 이젠 조금 그리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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