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내려간 생각/기록 21

독서 모임을 마무리 하며 2

읽다 보면, 책 속의 등장인물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역경 가득한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수필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혹은 열정적으로 지식을 전달해 주는 똑똑한 사람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도 한다. 1년간의 독서 모임을 통해 '책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느낀 많은 고뇌와 감정들을 현실로 가져와 곱씹어가며 내 삶에 비췄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 속의 역경을 이겨내는 힌트를 얻고, 연습했다. 어려운 현실의 문제를 앞서 겪은 분들의 지식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현실로 가져온 소중한 책 속 경험들은 독서 모임을 거쳐, 비로소 '나'의 경험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놓쳤던..

독서 모임을 마무리 하며 1

책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도록 해 준 동아줄이었다.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학교 폭력의 불안감에서 도망갈 곳을 마련해 줬던 도서관. 폭력적인 가정에서 샌드백으로 살아가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유년 시절의 유일한 도피처.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 버티다 보면 분명 길이 생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버팀목이 되어준 책. 책을 다시 가까이하기 시작한 지 1년. 많은 생각들이 변하고, 성장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은 정도로 예민했던 마음이 안정되었고, 건강도 1년 새에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아침이 되면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반년 가까이 지속된 칩거 생활 중에, 독서 모임 공고를 보고 참여하..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도 괜찮았다

그가 얼마나 나를 업신여기고 있는지 여실히 느끼면서도, 그 자리에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네가 나를 포함한 몇 명에 대해서 불쾌한, 혐오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넌 ‘그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내 앞에서 말했다. 나를 언급했던 부분만 쏙 빼놓고. 그 순간 왜 회피했을까.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같이 엮인 인간관계를 망치는 상황이 될까 봐서? 아니면 그가 무서워서?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도 괜찮았다. 나를 만만 하게 보고, 혐오하는 순간을 봤으니까. 요즘 내 삶의 도전 과제는 ‘만만함’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유 있어 보이고, 잘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이 ‘만만해 보이는 사람’으로 돌아와 버렸다. 당신의 말에 굳이 동의하지 않아도 토 달지 않았다..

2023년. 나다운 삶의 시작

아직 21년 말, 22년 초가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그새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지난해를 정리하며 쓴 글에 있는 내용처럼, 22년은 '나'를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걸음마를 처음 할 때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런 각오로 보낸 시간이었다. '나는'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감정의 흐름이 어떤가 지금의 신체 상태는 어떤가 그리고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가 생각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감정이 밀려올 때 대처는 어떻게 하는가 신체를 돌보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에 대한 '통제감'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상황이 변하는 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휩쓸려가던 나의 중심을 잡는 연습을 했다. 정말로 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이었다. 2023년에는 제대로 내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잡..

그냥, 화가 나서.

보고 있니 친구들. 내 생각을 친구들에게 어디까지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얼마나 친구들에게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해도 되는 것일까. 나의 삶의 가치와 완전히 다른 모습들을 친구들에게서 발견하는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솔직히 화도 난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순간, ‘내가 말을 하면 분명 이 친구들과 멀어지겠지.’ 그래서 여기에다 속 좀 풀어보려고. 충분히 친구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있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명확히 이해한다. 내가 그 장소, 그 시간 속 많은 사람들의 입장이었다면 나도 분명히 화가 났겠지. 하지만, 적어도 화가 나는 그 상황에서 어느 순간 한 번 쯤은, 다들 이성적으로 머리는 굴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저 사람들이 왜 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마음이 쉬이 풀리지 않아서 또 집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본래 서울바라기 입니다. 도시의 화려함과 북적거림을 정말 좋아합니다. 둠칫둠칫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도시 한 복판을 걷다 보면 하루 종일이 즐겁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인가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할 때, 조용한 자연 속을 찾고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요.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산을 가자고 한다던지, 계곡이나 경치 좋은 곳을 가자고 하면 정말 가기 싫어했었습니다. 간다고 해도 축 쳐져가지고는 대체 집에는 언제 가는걸까, 하고 짜증만 났었어요. '나는 어른이 되면 이렇게 시간 안 보낼거야.' 하는 생각도 수백번은 했습니다. 정말 얼마 전 까지는, 어렸을 때 다짐대로, 혼자 대학로에 가서 좋아하는 연극도 보고, 강남 한 복판의 북..

소용돌이 쳤다

며칠 동안 정신이 없었다. 역시 관계 안에서의 문제들이 정말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는 머릿속의 지식은 쉽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관련 글 링크 감정이 휘몰아 칠 때는, 대부분 소용돌이 안에 내 몸을 맡겨버리곤 했다. 소용돌이가 끝날 때까지 내가 어디로 날아가던 생각하지 않고 눈만 질끈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소용돌이 안에서 중심을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써 봤다. 잘 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한쪽 발, 그리고 나머지 발도 소용돌이의 거친 바람 안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소용돌이 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얼마나 다칠까. 두렵고 무서웠다. 끝났다. 열심히 쌓아 놓았던 많은 나의 마음들은 무너졌고, 많이 다쳤다. 황..

엉엉. 훌쩍.

눈물이 많은 남자아이 눈물이 많은 게 정말 창피했습니다. 아버지가 무섭게 화내면서 때리면 눈물이 나고, 친구가 심한 말을 하면 눈물이 나왔습니다. 전학 가는 날, 종례시간에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뚝뚝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나를 배신했다 느꼈을 때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한 시간 내내 소리 내어 울기도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더 많이 울 수 있었는데 많이 참고 참아서 저만큼이었습니다. 다른 남자 친구들은 잘 울지도 않던데 왜 나는 그렇게 잘 울었던 걸까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몇몇 친구들은 나를 만만하게 보았고, 부모님은 눈물 많은 제가 탐탁지 않았죠. 눈물 흘린다고 무작정 때리기도 했던 걸 보면...... 남자 화장실에서 간간이 보이는 변기 앞 문구가 있습..

안녕, 술

술이 정말 좋아 성인이 되서부터 술 없는 일상은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일상의 큰 즐거움 중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 하고 난 후에 동료와 함께 마시는 술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술은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외로울 때 혼자 마시는 술은 좀 더 내 감정에 심취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놀러 가서 마시는 술은 행복함을 배로 불려줬습니다. 거기다 술은 또 왜 이렇게 잘 받는 몸인지. 다른 술들 뿐만이 아니라 소주 조차도 '맛있다' 고 느껴져서, 정말 '맛'으로 술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특히나 보드카나 양주 같은 도수 높고 깔끔한 술이 입에 맞아서, 다른 사람들이 입가심으로 탄산음료를 마실..

나와 사람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합니다. 사람으로서 당연한 어려움일 테고, 저 또한 많이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요즘 제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상담도 받으면서 '관계'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잡히는 것 같아 여기에 조금 정리해 보려 합니다. 다른 분들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인간관계를 이야기하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 관계 속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관계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모든 관계는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가 없는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선택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습니다. 관계 안에서 생기는 어려움의 이유는 정말 다양하겠죠. 그중에서 큰 부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