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내려간 생각/기록

지금 그 곳은

오늘, 2022. 5. 17. 13:24

일년 반 동안 살았던 동네입니다. 가로수가 모두 벚꽃이었어요.

자라오면서 이사를 많이 다닌 편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 태어나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물가물하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동네들, 그리고 성인이 돼서 내 선택대로 이사를 다니는 요즘까지.

 

아른거리는 그 순간 그 때

가끔씩 혼자 산책하거나, 낮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 옛날에 살았던 집, 그리고 동네들이 아른아른거려요. 연탄을 때던 집에서 살았을 때, 연탄아궁이 속의 연탄이 새빨갛게 올라오던 그 뜨거움. 집 앞에 굴러다니던 연탄재. 그 골목의 옆집 형,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았던 아련한 기억들. 바로 앞에 있던 목욕탕 집 딸과 초등학교 같은 반이 되어 함께 다니던 등하굣길. 야자를 끝내고 꼭 우리 집 앞까지 같이 와 주던 소중한 친구들과 걷던 동네.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 지내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풍경까지. 옛날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풍경과 색깔, 분위기, 온도, 그리고 그 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니, 어린 그 마음 안에서 굉장히 많이 속상했었나 봐요. 이사를 가도, 한동안 예전에 살던 동네를 혼자 구경하러 찾아가기도 하고, 헤어진 친구들이랑 계속 연락하면서 만나러 다니곤 했습니다. 아직도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를 갔었습니다. 인천에 살던 동네와 친구들이 그리워서 몇 주에 한 번씩 혼자 1호선 전철과 버스를 타고 홀로 놀러 갔었어요. 참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 먼 거리를 혼자 다녔을까, 제 스스로 기특하기도 한 기억입니다.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어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살던 동네를 찾아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보는 그 일들을 여전히 하고 있었죠.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몇몇 친구들은 

"뭐하러 그렇게까지 돌아다니고 그래?"

라고 저에게 말하곤 했었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이렇게 과거에 살던 동네들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를 유별나게 바라보는 그 시선도 싫었고, 어차피 결국은 흘러간 과거인데, 과거에 파묻혀서 사는 건 나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록달록, 다채로웠어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사를 많이 다닐 수밖에 없었던 가정환경을 많이 탓해 왔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도, 동네가 정들만하면 떠나야 하는 속상함도 많이 싫었거든요. 친구가 없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을 이사를 많이 다닌 탓으로 설명하기도 했죠. 하지만 요즘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오히려 이사를 많이 다닌 덕분에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유년기의 삶이 그만큼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웠던 것이다, 하고 말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나름 다양한 환경들을 접하고, 적응해 나가면서 지금의 제 모습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하지 않았던, 옛날에 살던 동네들을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만 해도 두근거립니다. 지금은 훌쩍 다 커버린 어른이니까, 어린이 었던 그 눈에 담겨있던 풍경과는 다르지 않을까. 두근두근.

조만간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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