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4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

용기 있던 시절이었다. 말도 못해, 돈 벌 곳도 정해지지 않았어, 조금도 익숙한 환경이 아니었는데 그곳으로 나를 내던졌었다. 저 사람이 정말 나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유로웠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외국인이었으니까.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무기 삼아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는 정말 자유롭게 행동했다. 트와이스의 likey를 들으며 길거리에서 헤벌쭉,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화가 나면, 한국어로 온갖 욕을 해 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슬프면 그냥 냅다 길을 걸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뭐 어때, 너희들이 나를 알아? 너희들의 언어로 나에게 뭐라고 하면 나는 못 들은 척 하면 돼. 수틀리면 돌아가면 되니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던 인생 첫 경험이었다. 이전까지는 항상 말조심하..

22년 1월. 무기력했던 불나방

22년의 시작은 지긋지긋한 코로나와 함께였다. 3차 접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긴가민가 하다가, 에이 이미 2차까지 맞았는데… 하는 생각으로 그냥 3차를 눈 질끈 감고 맞았다. 1, 2차 접종 때는 몸이 불같이 아팠는데, 3차 접종은 조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정도로 끝났다. 다행이었지. 막막했다.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모아둔 돈이 계속 새어나간다는 그 상황이 나를 정말 무섭게 했다. 사랑에 미쳐 있을 때 썼던 그 돈만 아꼈더라도 반년은 껌이었을 텐데. 반년을 정말 무기력 그 자체로 보냈다. TV를 켜 놓고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 조금은 벗어나겠다 싶어서 방치해뒀던 이 티스토리 계정을 살..

사람이 좋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화두는 '외로움'이다. 단순히 옆에 연인이 없어서 외로운 외로움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도 있겠지만,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떠올려보면 모두 다 '외로움'과 관련 있는 일들이었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내 특징도 외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외로움이라는 결핍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저는 친한 사람에 대한 욕심도 없고, 혼자가 굉장히 편해요." 상담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가 정말 정말 부러웠다. 아, 나도 혼자가 편했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한 욕심도 없었으면 좋겠다. 외롭다고 하지만 외로워하면서도, 다른 이중적인 모습도 있다. 항상 인간관계를 좁..

벽장

2017년 8월 1일. 아마 이 즈음이다. 노래를 한 곡 반복하며 쓸쓸히 걷고 또 걸었었다. '오늘 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오왠 (O.WHEN) - 오늘 (Today) 외로움의 감정이 익숙하지만, 유달리 힘든 때였다. 가까이에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도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있는데. 외국에 있어서 외로운 걸까? 사람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내가 어디가 아파서 그런가? ... 나름 이것저것 노력했다. 일하는 동료들과도 실컷 웃으며 떠들고, 친구와 함께 놀러도 다니고, 소개받아 알게 된 사람과 놀러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텅 빈 듯한 이 마음은 도저히 도저히 메워지지 않았다. 정말 무서웠다. 끝도 없는 외로움에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막막함과 후회감 어딘가 내가 고장 난 듯한, 도저히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