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내려간 추억 23

무엇이 남았니

꿈속 같았던 3주. 정말 오랜만에 느꼈던 두근거림. 나의 존재만으로도 여전히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서 행복했어. 너의 그 따뜻했던 글자와 말들이 여전히 눈과 귀에 선해. 고마웠어. 너는 나와 생각이 달랐던 것임을 뒤늦게 알고 나서는 잠깐이지만 화도 나고 배신감도 느꼈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혼자만의 기대였는데 왜 내가 너에게 화를 내나 싶어서 피식 웃었단다. 그래, 내가 너에게 확실하게 물어보길 잘했지. 역시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인간관계에서 참 중요한 부분이다 싶구나. 안 그랬으면 서로 오해만 쌓이다가 펑 하고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너와의 3주가 끝나고 쓰라린 아픔이 남았어. 그렇지만, 그 덕에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들..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

용기 있던 시절이었다. 말도 못해, 돈 벌 곳도 정해지지 않았어, 조금도 익숙한 환경이 아니었는데 그곳으로 나를 내던졌었다. 저 사람이 정말 나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유로웠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외국인이었으니까.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무기 삼아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는 정말 자유롭게 행동했다. 트와이스의 likey를 들으며 길거리에서 헤벌쭉,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화가 나면, 한국어로 온갖 욕을 해 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슬프면 그냥 냅다 길을 걸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뭐 어때, 너희들이 나를 알아? 너희들의 언어로 나에게 뭐라고 하면 나는 못 들은 척 하면 돼. 수틀리면 돌아가면 되니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던 인생 첫 경험이었다. 이전까지는 항상 말조심하..

22년 12월. 세상에 나를 던지자

도전. 지난달에는 평소와 다르게 소규모의 커뮤니티에 참여하며 활동해 보았었다. 참여했던 그 순간의 재미와 뿌듯함, 소속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는지, 이번 달에는 좀 더 과감히 행동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방면으로 내가 참여해 볼 수 있는 게 없을지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들이 모인 대형 커뮤니티에 참여해 보았다. 솔직히, 전혀 모르는 많은 사람 사이에 나 홀로 참여한다는 것이 걱정되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정말 행복한 도전이었다. 내가 가진 고민을 나누고, 이해받으며, 세상에는 나를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올해 내내 ‘나’에게 충실한 시간이었다면, 마지막 12월은 나를 넘어 타인과 함께 연대하는 마음을 경험했다..

22년 11월. 마음의 여유

내가 심심하다니 마음의 여유를 많이 되찾으면서, 놀랍게도 ‘심심함’을 느꼈다. ‘심심하다’는 개념을 어느 순간 잊고 살았다. 심심함은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심심하다는 표현 안에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와 재미를 느끼고 싶다는 욕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기력한 감정 속에서는 아마 심심함을 느낄 새가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재미가 없는데 어떻게 심심하겠어. 내가 나 스스로를 잘 돌 보고 있었기 때문에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특하구먼. 11월에는 올해의 여느 때와는 다르게 혼자 하는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들을 했다. 한동안 잘 만나지 않던 가족과 만나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원데이 클래스 같은 커..

22년 10월. 가을. 행복함.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 왔다. 밖에 나가기 참 좋은 때가 왔다. 저번 달 까지는 가을을 찍먹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10월은 한낮에 밖을 걸어도 덥다고 느껴지지 않는, 진짜 가을이 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가을을 반길 줄이야. 많이 변했구나. 10월이 되니 확실히 마음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더불어,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니 몸도 가벼워져서 더 밖에 나가고 싶어졌다. 무기력한 상태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이 행복한 기분. 좋다. 여름동안 다니던 공유 오피스 기간이 끝나고, 시간을 보내러 종종 이케아를 갔었다.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집을 꾸미며 살 수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는 것도 즐겁고,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이케아 레스토랑이 있다. ..

22년 9월. 가을 하늘

여전히 낮에는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8월의 독서모임을 하던 중, 참여자 한 분 께서 소개해 주셨던 책 중에 ‘구름’에 대한 책이 있었다. 그다지 재밌는 책은 아니지만, 다양한 구름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것이 참 좋다는 코멘트를 해 주셨다. 그분의 책 소개가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는지, 그 이후로 자주 하늘을 보게 되었다. 가을 하면 높고 푸르른 하늘. 신기하게 9월이 되니까 정말로 높고 푸르른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땅이 한 김 식어가는 계절이 왔다. 딱 1년 전 이 때는 세상이 참 미웠고, 인생이 괴로웠었다. ‘내가 죽을 때가 되면 딱 떠오를 순간이 지금이야.’라고 되뇌면서 힘겨워하던 때. 그 후로 1년의 시간이 지났고, 푸른 하늘과 흩뿌려진..

22년 8월. 책과 함께 한 여름

책과 함께 한 여름 정말 더운 여름이었다. 여름 나기를 무척 힘들어한다. 추위는 옷을 입으면 되는데, 여름은 답이 없다. 이렇게 더울 때 집안에서 에어컨 쐬고 시원하게 보내는 게 제일 좋지만, 그렇게 마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나름 고민을 했다. 그러다 근처에 공유 오피스를 알게 되었다. 잘 됐다, 싶어서 회사원 된 것 마냥 매일 오피스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편안한 의자에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잠깐씩 낮잠도 잤다. 확실히 마냥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와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주 작지만 ‘해냈다.’라는 성취감이 드는 것도 좋지. 8월은 책과 함께 꽤 열심히 살았던 한 달이었다. 올 초부터 시작했던 독서모임을 계속 이어오며 책에 대한 욕심이 날로 ..

22년 7월. 생각하다. 사색하다.

7월의 시작도 여행. 날이 참 좋았다. 아직 가을도 안 됐는데 이렇게 하늘이 이쁠까. 철원으로 향하는 내내 쾌청한 하늘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어디를 가야 할지 결정이 쉽사리 나지 않을 땐 주로 서울의 윗 쪽으로 향하는 편이다. 북한 방향으로 올라가면 느껴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거운 분위기가 낯설지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분단의 현실과 역사에 새겨진 아픔들. 그리고 불안함과 평화가 공존하는 현재. 철원에 한 번쯤 가 보고 싶었다. 후삼국시대의 태봉의 수도였고, 현대사의 큰 아픔인 6.25 전쟁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DMZ안에 숨겨져 있어 보지 못하는 유적들, 그리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전쟁의 상흔들. 서울의 어느 한 공간을 알게 ..

쓰는 사람이 된, 지워낸 그.

여느 때처럼 인스타를 보다가 지워냈던 이름을 발견했다. 그 이름을 보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단숨에 기억해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전학생으로 새로운 학교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새로 사귀게 되었던 친구다. 키도 크고 멀끔하게 생긴 데다, 성격도 무던하고 다른 학우들과 잘 어울리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학교라는 것이 그렇지 않나, 어른이 되면 서로 친구가 될 사이가 아님에도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마주한다는 이유 만으로도 친구가 되는 곳. 학교에서 만났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사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와 집이 정말 가까워서 등하교를 함께 했다. 왕따를 당하는 나와 개의치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참 많은 의지를 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

22년 6월. 나다움의 시작

평생 기억에 남을 의미 있는 순간이 많았던 6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분명 몇 주 전까지 무기력에 시달리던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방구석에 쪼그려 있는 것이 답답한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기 좋아하던 나의 모습을 드디어 다시 되찾아 간다는 행복함. 그리고 막상 그 순간에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엄청나게 결정적이었던 순간들. 우선, 정말 여행을 많이 다녔다. 첫째 주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다만, 그렇게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면 꼭 싸우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내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최악의 기분이 들었던 여행이지만, 그 덕에 나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살짝 조미료를 쳐서 설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