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9

무엇이 남았니

꿈속 같았던 3주. 정말 오랜만에 느꼈던 두근거림. 나의 존재만으로도 여전히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서 행복했어. 너의 그 따뜻했던 글자와 말들이 여전히 눈과 귀에 선해. 고마웠어. 너는 나와 생각이 달랐던 것임을 뒤늦게 알고 나서는 잠깐이지만 화도 나고 배신감도 느꼈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혼자만의 기대였는데 왜 내가 너에게 화를 내나 싶어서 피식 웃었단다. 그래, 내가 너에게 확실하게 물어보길 잘했지. 역시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인간관계에서 참 중요한 부분이다 싶구나. 안 그랬으면 서로 오해만 쌓이다가 펑 하고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너와의 3주가 끝나고 쓰라린 아픔이 남았어. 그렇지만, 그 덕에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들..

독서 모임을 마무리 하며 2

읽다 보면, 책 속의 등장인물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역경 가득한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수필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혹은 열정적으로 지식을 전달해 주는 똑똑한 사람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도 한다. 1년간의 독서 모임을 통해 '책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느낀 많은 고뇌와 감정들을 현실로 가져와 곱씹어가며 내 삶에 비췄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 속의 역경을 이겨내는 힌트를 얻고, 연습했다. 어려운 현실의 문제를 앞서 겪은 분들의 지식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현실로 가져온 소중한 책 속 경험들은 독서 모임을 거쳐, 비로소 '나'의 경험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놓쳤던..

독서 모임을 마무리 하며 1

책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도록 해 준 동아줄이었다.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학교 폭력의 불안감에서 도망갈 곳을 마련해 줬던 도서관. 폭력적인 가정에서 샌드백으로 살아가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유년 시절의 유일한 도피처.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 버티다 보면 분명 길이 생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버팀목이 되어준 책. 책을 다시 가까이하기 시작한 지 1년. 많은 생각들이 변하고, 성장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은 정도로 예민했던 마음이 안정되었고, 건강도 1년 새에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아침이 되면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반년 가까이 지속된 칩거 생활 중에, 독서 모임 공고를 보고 참여하..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

용기 있던 시절이었다. 말도 못해, 돈 벌 곳도 정해지지 않았어, 조금도 익숙한 환경이 아니었는데 그곳으로 나를 내던졌었다. 저 사람이 정말 나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유로웠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외국인이었으니까.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무기 삼아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는 정말 자유롭게 행동했다. 트와이스의 likey를 들으며 길거리에서 헤벌쭉,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화가 나면, 한국어로 온갖 욕을 해 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슬프면 그냥 냅다 길을 걸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뭐 어때, 너희들이 나를 알아? 너희들의 언어로 나에게 뭐라고 하면 나는 못 들은 척 하면 돼. 수틀리면 돌아가면 되니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던 인생 첫 경험이었다. 이전까지는 항상 말조심하..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도 괜찮았다

그가 얼마나 나를 업신여기고 있는지 여실히 느끼면서도, 그 자리에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네가 나를 포함한 몇 명에 대해서 불쾌한, 혐오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넌 ‘그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내 앞에서 말했다. 나를 언급했던 부분만 쏙 빼놓고. 그 순간 왜 회피했을까.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같이 엮인 인간관계를 망치는 상황이 될까 봐서? 아니면 그가 무서워서?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도 괜찮았다. 나를 만만 하게 보고, 혐오하는 순간을 봤으니까. 요즘 내 삶의 도전 과제는 ‘만만함’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유 있어 보이고, 잘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이 ‘만만해 보이는 사람’으로 돌아와 버렸다. 당신의 말에 굳이 동의하지 않아도 토 달지 않았다..

2023년. 나다운 삶의 시작

아직 21년 말, 22년 초가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그새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지난해를 정리하며 쓴 글에 있는 내용처럼, 22년은 '나'를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걸음마를 처음 할 때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런 각오로 보낸 시간이었다. '나는'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감정의 흐름이 어떤가 지금의 신체 상태는 어떤가 그리고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가 생각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감정이 밀려올 때 대처는 어떻게 하는가 신체를 돌보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에 대한 '통제감'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상황이 변하는 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휩쓸려가던 나의 중심을 잡는 연습을 했다. 정말로 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이었다. 2023년에는 제대로 내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잡..

22년 12월. 세상에 나를 던지자

도전. 지난달에는 평소와 다르게 소규모의 커뮤니티에 참여하며 활동해 보았었다. 참여했던 그 순간의 재미와 뿌듯함, 소속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는지, 이번 달에는 좀 더 과감히 행동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방면으로 내가 참여해 볼 수 있는 게 없을지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들이 모인 대형 커뮤니티에 참여해 보았다. 솔직히, 전혀 모르는 많은 사람 사이에 나 홀로 참여한다는 것이 걱정되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정말 행복한 도전이었다. 내가 가진 고민을 나누고, 이해받으며, 세상에는 나를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올해 내내 ‘나’에게 충실한 시간이었다면, 마지막 12월은 나를 넘어 타인과 함께 연대하는 마음을 경험했다..

22년 11월. 마음의 여유

내가 심심하다니 마음의 여유를 많이 되찾으면서, 놀랍게도 ‘심심함’을 느꼈다. ‘심심하다’는 개념을 어느 순간 잊고 살았다. 심심함은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심심하다는 표현 안에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와 재미를 느끼고 싶다는 욕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기력한 감정 속에서는 아마 심심함을 느낄 새가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재미가 없는데 어떻게 심심하겠어. 내가 나 스스로를 잘 돌 보고 있었기 때문에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특하구먼. 11월에는 올해의 여느 때와는 다르게 혼자 하는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들을 했다. 한동안 잘 만나지 않던 가족과 만나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원데이 클래스 같은 커..

22년 10월. 가을. 행복함.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 왔다. 밖에 나가기 참 좋은 때가 왔다. 저번 달 까지는 가을을 찍먹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10월은 한낮에 밖을 걸어도 덥다고 느껴지지 않는, 진짜 가을이 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가을을 반길 줄이야. 많이 변했구나. 10월이 되니 확실히 마음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더불어,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니 몸도 가벼워져서 더 밖에 나가고 싶어졌다. 무기력한 상태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이 행복한 기분. 좋다. 여름동안 다니던 공유 오피스 기간이 끝나고, 시간을 보내러 종종 이케아를 갔었다.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집을 꾸미며 살 수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는 것도 즐겁고,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이케아 레스토랑이 있다. ..

22년 9월. 가을 하늘

여전히 낮에는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8월의 독서모임을 하던 중, 참여자 한 분 께서 소개해 주셨던 책 중에 ‘구름’에 대한 책이 있었다. 그다지 재밌는 책은 아니지만, 다양한 구름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것이 참 좋다는 코멘트를 해 주셨다. 그분의 책 소개가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는지, 그 이후로 자주 하늘을 보게 되었다. 가을 하면 높고 푸르른 하늘. 신기하게 9월이 되니까 정말로 높고 푸르른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땅이 한 김 식어가는 계절이 왔다. 딱 1년 전 이 때는 세상이 참 미웠고, 인생이 괴로웠었다. ‘내가 죽을 때가 되면 딱 떠오를 순간이 지금이야.’라고 되뇌면서 힘겨워하던 때. 그 후로 1년의 시간이 지났고, 푸른 하늘과 흩뿌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