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내려간 추억/Connecting the dots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

오늘, 2023. 2. 26. 08:26

 

용기 있던 시절이었다. 말도 못해, 돈 벌 곳도 정해지지 않았어, 조금도 익숙한 환경이 아니었는데 그곳으로 나를 내던졌었다. 저 사람이 정말 나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유로웠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외국인이었으니까.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무기 삼아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는 정말 자유롭게 행동했다. 트와이스의 likey를 들으며 길거리에서 헤벌쭉,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화가 나면, 한국어로 온갖 욕을 해 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슬프면 그냥 냅다 길을 걸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뭐 어때, 너희들이 나를 알아? 너희들의 언어로 나에게 뭐라고 하면 나는 못 들은 척 하면 돼. 수틀리면 돌아가면 되니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던 인생 첫 경험이었다. 이전까지는 항상 말조심하고, 눈치 보면서 타인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신없었다. 아니, 정신없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지. 으레 누구나 이런 인생을 사는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존재하는 것조차 몰랐던 이 틀을 부숴버린 소중한 경험을 이렇게 마주했었다. 

다만, 많이 외로웠다. 소중한 친구가 옆에 있어도, 만나서 되지도 않는 언어를 손짓, 발짓 해 가며 수다 떨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외로웠다. 너무 외롭다 보니, '외롭다는 감정을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하는 의심마저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잘못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견디기가 참 쉽지 않았다. 


행복은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다가 마주치는 어느 '순간'이라고 한다. 그 행복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가 있는데, '고통'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 가서 부딪히는 고통을 통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행복했다.
외로움이라는 고통을 지나, 내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는 행복함을 배웠다. 


지금은 저 때의 유산으로 버티며 살아간다. 돈이 없어도, 뭘 해야 할지 막막해도. 나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 본 경험이 있기에, 지금을 버틸 수 있다. 행복함을 느끼기 위한 고통의 과정 중에 있는 거겠지. 

외로움도 여전하다. 나의 외로움을 공고히 하던 가장 커다란 벽을 저 때 허물었지만, 그보다 작다 하더라도 여전히 벽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 허물어야 할까. 이것도 고통의 과정 중에 있는 거겠지.


지금의 내 모습이 많이 걱정되고, 무섭다. 그런데 어쩌겠어, 삶은 살아내야 하는데. 
고통이 끝나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 굳게 믿으며,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를 쥐어짜 내는 중이다.

 

 

 

 

오늘.

litt.ly/o.n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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