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내려간 추억 23

22년 5월. I am I, You are you.

나는 나. 당신은 당신. 친한 친구와 다퉜다. 그 후유증과 함께 5월이 시작되었다. 그 친구와는 정말 평생 함께 갈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의미 있던 사람이었고, 의지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사이가 급격하게 틀어져 버렸다. 뭔가 내 삶이 이제 풀려가나, 하는 상황에서 생긴 돌발상황이라 굉장히 마음이 복잡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상담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담에 가서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덕분인지 내 예상보다는 수월하게 흘려보내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노력도 한몫했지만. I am I, You are you. 게슈탈트 기도문(선언문)으로 알려진 글이다. 단순해 보이는 글이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엄청난 글이었다. ‘그래, 나는 나고 너는 너잖아.’ 내가 무너..

22년 4월.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4월, 완연한 봄. 처음 시작이 어렵다고 했던가, 상담도 받고, 독서모임을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하니 생활 전반에서 조금씩 의욕이 샘솟았다. 여전히 무기력한 생활패턴의 지속이 하루의 대부분이었지만, 조금씩 무기력함에 균열이 생긴 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였다. 집 근처에 굉장히 큰 공원이 있다. 그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평일 낮에 공원을 찾았다. 공원을 찾은 것이 얼마만인지. 귀찮음을 억눌러가며 갔지만, 막상 공원에 도착하니 정말 좋았다. 이렇게 멋진 공원을 코앞에 두고 지금껏 집 안에만 있었던 내가 스스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 평일 낮인데도 공원에는 사람이 반, 꽃이 반이었다. 아, 이래서 다들 꽃놀이를 하러 가는 거구나. 정말 정말 예쁜 경관이었다. ‘나도 내년에는 저 커..

22년 3월.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십니까

코로나가 엄청나게 유행하던 3월이다. 세상이 코로나로 매우 정신없이 흘러가는 동안, 나의 세계도 격변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렸고, 나도 코로나 감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항상 마스크를 끼고 조심하며 살고 있다 생각했건만. 내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감염이 확인되고 일주일간 격리를 했지만, 솔직히 평소에도 자가격리와 같은 집콕 생활이 익숙했기에 격리가 답답하지는 않았다. 다만 몸이 아파서 힘들었을 뿐. 코로나 걸리기 전인 3월 초, 날씨도 풀렸겠다,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어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안면도로 향했다. 바다를 보고 싶긴 했는데 동해나 남해 바다를 보러 가기에는 부담스러워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안면도를 떠올렸다..

22년 2월. 은둔형 외톨이

2월은 저번 달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실직과 이별, 불안정한 마음 상태로 작년 말부터 건강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다 올해의 시작부터 본격적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고질병이던 허리디스크가 걷지 못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졌다. 피부도 점점 눈에 띄게 나빠졌다. 피로와 아픔에 무감각한 편이던 내가,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라면 정말 심각한 수준. 집에만 틀어박혀서 무기력, 우울함에 끙끙대다가,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가는 덕분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픈데 병원은 가야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허리가 아팠던 건, 내 몸이 제발 밖에 좀 나가라며 보낸 신호였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무기력, 우울함에는 ‘움직이는 것’이 답이었다. 매일매일 병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다 보니..

22년 1월. 무기력했던 불나방

22년의 시작은 지긋지긋한 코로나와 함께였다. 3차 접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긴가민가 하다가, 에이 이미 2차까지 맞았는데… 하는 생각으로 그냥 3차를 눈 질끈 감고 맞았다. 1, 2차 접종 때는 몸이 불같이 아팠는데, 3차 접종은 조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정도로 끝났다. 다행이었지. 막막했다.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모아둔 돈이 계속 새어나간다는 그 상황이 나를 정말 무섭게 했다. 사랑에 미쳐 있을 때 썼던 그 돈만 아꼈더라도 반년은 껌이었을 텐데. 반년을 정말 무기력 그 자체로 보냈다. TV를 켜 놓고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 조금은 벗어나겠다 싶어서 방치해뒀던 이 티스토리 계정을 살..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다.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다. 인생에서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 한 사람은 아니었다. 찾으려고 마음먹어야 보일 아주 작은, 하지만 괜히 신경 쓰이는 점 하나 정도의 느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순간만큼은 나를 온전히 보여줬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랑 오래간 관계도 아니고, 엄청난 감정적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나누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을 뿐. 아니야,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 이상이었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시간은 꽤나 흘렀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뜻이 새삼스럽게 와닿을 만큼 괜찮아졌다... 고 생각했는데, 떠올랐다. 떠오른 순간, 원하지 않던 과거 여행을 다녀왔다. 과거를 여행해봤자 좋은 게 없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지만,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결국 나를 데..

도서관, 나의 놀이터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작은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던 날, 아장아장 걷던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채 밖을 나왔다. 그 추운 날씨를 견디며 동생과 향한 도서관. 7호선 장승배기역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동작도서관이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다. 컴퓨터를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이 재밌어 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책이 좋아졌는지, 그리고 도서관을 언제부터 갔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한 권 뚝딱 끝내고 나면, 책에 몰입 했던 그 순간과 다 읽었다는 뿌듯함, 그리고 TV나 컴퓨터에서 느낄 수 없는 내 맘대로인 상상의 즐거움은 지금도 떠오른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오른편에 있던 아동서가로 향하면, 왼편에는 사서 선생님이 계시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빼곡..

강렬했던 인생의 드라마

엄청났습니다 제 인생에 이런 순간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요. S를 만난 건, 19년 이른 겨울이었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처음 만났었어요. 모임이 끝나고, 간단한 저녁 겸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그 뒷풀이 자리에서 서로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었죠. 서로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 테이블에 술을 마시는 건 저와 S, 둘 뿐이었어요. 평소에는 제가 입에 잘 대지도 않던 소맥을 마시면서, 둘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자리가 파하고, 가게를 나가면서 서로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손을 잡았습니다. 기뻤습니다 저에게 이렇게까지 호감을 표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매력적인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까지 적극적이라니요. 심..

교통사고

반년을 걷지 못했어요 2016년 여름이었습니다.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카페에서 커피랑 음료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배달 일도 같이 하고 있었어요. 이 때는 배달 앱이 있었지만 엄청 많이 쓰이던 때는 아니어서 전화로 대부분 주문받아서 배달 가곤 했어요. 배달대행 서비스도 아니고 제가 직접 배달을 다녔는데, 나름 재미있었어요. 배달 오토바이로 성수동을 종횡무진 했었습니다 😎 해가 쨍쨍하던 6월,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성수역 앞을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졸음운전을 하던 차가 저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다가오는 차를 보고 세우려 했지만, 이미 속도가 붙어있던 오토바이와 더 빠르게 달려오던 차는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대로 날아가서 양 무릎을 땅에 콱 찍었어..

벽장

2017년 8월 1일. 아마 이 즈음이다. 노래를 한 곡 반복하며 쓸쓸히 걷고 또 걸었었다. '오늘 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오왠 (O.WHEN) - 오늘 (Today) 외로움의 감정이 익숙하지만, 유달리 힘든 때였다. 가까이에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도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있는데. 외국에 있어서 외로운 걸까? 사람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내가 어디가 아파서 그런가? ... 나름 이것저것 노력했다. 일하는 동료들과도 실컷 웃으며 떠들고, 친구와 함께 놀러도 다니고, 소개받아 알게 된 사람과 놀러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텅 빈 듯한 이 마음은 도저히 도저히 메워지지 않았다. 정말 무서웠다. 끝도 없는 외로움에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막막함과 후회감 어딘가 내가 고장 난 듯한, 도저히 출발점..